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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해석 가족 에세이

10시간 공부, 오천 원에 사!

by eye-bird 2024. 11. 25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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막내가 토요일에 국어 학원에 다녀온 후로 게임 삼매경이었다.

“너, 그렇게 놀아도 돼?”

“내일, 공부 10시간을 할 거니까 괜찮아!”

“몰아서 하지 않고 날마다 규칙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아?”

“내가 알아서 한다고! 엄마, 나, 내일 10시간 공부할 거니까 오천 원 줘!”

“뭐, 오천 원?”

“보상이 있어야 공부할 맛이 나잖아!”

막내는 당돌했다.

“네 공부니까, 공부하고 노래를 듣던, 게임을 하던, 스티커를 사던. 네가 보상해 줄 일이지?”

나는 쉽게 막내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.

 

“스티커를 살 거야, 그러니까 오천 원 달라고, 나 돈 없단 말이야!”

막내의 한 달 용돈이 4만 오천 원인데, 이번 달에 제 돈으로 마라탕을 세 번 사 먹었으니, 돈이 없을 테지. 그래도 정에 끌려서 막내의 꾐에 휩쓸리면 사달이 날 게 뻔하다. 돈으로 공부를 사면 돈을 안 주는 날은 공부를 안 하는 게 당연시되니까, 잘못된 공부 습관이 된다.

“공부하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!”      

 

일요일인 오늘도 점심을 먹고 계속 게임 삼매경이다. 내 속은 타고 있지만 긍정 티슈로 닦아내며 막내에게 말을 붙였다.

“너, 오늘 10시간 공부한다며?”

“엄마가 오천 원 안 줘서 안 해!”

“핑계는―”

나는 눈을 질끈 감고, 잔소리할 입도 막으며 막내 방에서 나왔다.

막내의 에피소드는 사도, 막내의 공부는 절대 사고 싶지 않아서였다. 매일 주면 비싸면서도 가치가 떨어지는 ‘잘못된 공부 습관’이기 때문이다.

 

‘하다 하다, 공부하는 걸 팔려고 해! 어림도 없지!’     

저녁놀이 깔리기 시작한 5시가 가까운 시간, 산책을 나섰다.

“엄마, 어디 가?”

“산책 좀 하려고.”

“나, 마시멜로 사줘!”

“10시간 공부해 그럼!”

나는 농담을 던졌다.

“지금이 몇 신데, 내가 10시간을 어떻게 공부해? 안 그래도 5시에 공부하려고 했어!”

“알았어.”

막내의 말에 위안이 됐고, 산책하면서도 막내에 대한 불만이 귀여운 생각으로 바뀌었다.

‘엄마한테나 공부를 돈으로 팔지, 누구한테 팔 수 있겠어?’

나는 막내와 티키타카 한 거로 생각하며 넘겼다.              

 

나는 큰딸부터 자녀들과 핸드폰과 컴퓨터, 티브이로 여러 번 갈등이 있었다. 처음부터 이 매체를 볼 수 있는 조건과 시간, 범위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효력이 있게끔 강력한 규칙을 정하지 않은 게 후회는 된다. 너무 쉽게 핸드폰과 티브이를 오래 볼 수 있게 한 게…. 그래도 갈등의 과정에서 자녀와 깊은 대화도 나누게 되고,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. 물론 이 매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이 공부에 소홀하게 된 점은 있다. 잃은 점만 생각하면 그것만 보이고, 얻은 점을 찾아보면 그것이 더 감사한 일이 될 수 있다. 아이들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. 공부보다 핸드폰과 컴퓨터보다 아이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일이 나에게 무엇보다 감사했다.

 

마시멜로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5시 반쯤, 막내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.

나는 또 티키타카를 자청했다.

“공부한다며?”

“머리 감고!”     

막내는 방을 나와 거실을 두리번거렸다.

“뭐 찾아?”

막내는 식탁에 놓여있는 마시멜로 봉지를 보더니,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.

“참치 마요 덮밥 해줄게. 7시에 먹자!”

“알았어, 나 마시멜로 하나 먹고 들어가서 공부할게.”

“두 개 먹어도 돼?”

막내는 금세 다시 나와 마시멜로를 하나 더 먹었다.

“다 가져가지?”

“아니야, 진짜 나 공부하러 들어가는 거야!”

“알았어.”     

자녀가 공부하는지, 안 하는지 살필 필요는 없다. 자녀의 말이 거짓말인지, 아닌지도…. (공부하는 척하고 책 밑에 핸드폰을 숨겨 놓을 수 있다.) 자녀 스스로 하려는 마음과 늘 믿어주는 부모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. 자녀가 힘들더라도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와 일이 되길 나는 기도할 뿐이다. 예전의 모습처럼 감시자의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.

 

마시멜로의 힘으로 막내는 공부한다. 마시멜로보다 그것을 사 온 엄마의 사랑을 입안에 굴리며 막내는 공부한다. 공부를 안 해도 좋다. 즐겁게 학교 다니고, 학교 다니고 싶다는 말, 진심으로 듣고 싶다. 그런 돌림 노래를 듣게 될 날이 올 거라 믿는다!

"엄마, 학교 가고 싶어, 밤이 왜이리 길어!"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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