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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 읽고, 기억에 남는 생각들/소설외

짧은 소설 쓰는 법 4(퇴고)

by eye-bird 2024. 7. 2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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퇴고의 중요성
 
일필휘지로 글을 쓰고, 그것이 세상을 뜨르르 울릴 멋진 소설이 되어 준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, 사실 글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야 좀 쓸 만해지는 법입니다.
조선 시대 문인이었던 김일손은 글을 쓰고 나면 상자 안에 던져두고 몇 달이 지난 다음에야 다시 꺼내서 읽어 보고 고쳤다고 합니다. 어떤 발상이 와서 글을 쓰게 되면 빨리 완성해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텐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?
글이 한창 써질 때는, 손이 왜 이리 더딘가 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일까지 있게 마련입니다. 일종의 도취 상태에서 글을 쓰게 되죠. 그래서 글 속의 모순과 오류를 깨닫지 못합니다. 김일손은 바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감정이 식기를 기다려 퇴고에 들어간 것입니다.
이렇게 자신의 글에 냉정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. 실제로 글에 표현되지 않아 부족한 부분은 작가 자신이 잘 알고 있고, 여러 차례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이 읽히죠.
 


 
 
퇴고의 요령 세 가지

퇴고에는 요령이 있습니다. 특히 소설의 퇴고는 더욱 요령이 필요합니다.
우선은 큰 틀에서 살펴보세요. 글의 전체적인 흐름이 안정되어 있고, 애초에 의도한 대로 작성되었는가를 자세히 보는 겁니다.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.
그다음에는 설명에 불필요한 부분은 없는가, 또 설명이 과도한 부분은 없는가를 찾아봐야 합니다. 대개 이 부분을 가장 어려워합니다.
 
“운동장에서 소리가 들려와요. 지금은 수업 시간이라 운동장을 쓸 일이 없는데 체육이라도 하는 걸까요?”
 
딱히 잘못된 문장은 아닙니다.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임을 생각해 보면 저렇게 길게 쓸 필요가 없죠. 다음과 같이 써 봅시다.
 
“운동장에서 소리가 들려와요. 체육 수업을 하는 반이 있나 봅니다.”
 
작가는 머릿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,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. 특히 습작이 부족하면 쉽게 이 함정에 걸립니다. 대체로 지루하게 설명이 많은 경우보다 빼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죠. 이런 부분을 가리켜 글이 ‘비약’했다고 말합니다. 순서상 필요한 대목을 쓰지 않고 건너뛰는 것입니다.
 
“야, 이남우! 오늘은 또 무슨 생각 했냐?”
해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달려온다.
“그냥 오늘은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어.”
나는 별거 없다는 듯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.
 
해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달려오고 있습니다. 그럼 혜리의 말은 어느 시점에서 나온 걸까요? 달려 오기 전에? 달려왔다는 건 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는 뜻이므로 내가 혜리의 말을 알아들으려면, 혜리는 고함을 쳤어야 할 것 같네요. 그리고 나는 혜리를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. 그래야 혜리가 웃으며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.
그런데 왜 혜리는 웃으며 달려오다 고함까지 친 걸까요? 내가 천천히 걸어갈 때 혜리는 달려왔는데 이제는 나와 같이 걷고 있는 것일까요? 아마도 작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. 하지만 둘이 만난 뒤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글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.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장면이 뜨문뜨문 나온 거죠. 친구와 만나는 장면을 그냥 머리로만 쓰지 말고. 진짜 친구를 만났을 때 물리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잘 떠올려서 묘사하기 바랍니다.

비약을 하는 이유는 글의 논리가 부족해서입니다. 얌전한 모범생이었던 주인공이 난폭해진다면 그만한 갈등이 있어야 함은 물론, 그 아이의 성격 저 깊숙한 곳에 폭력적인 성향이 있어야 합니다. 그것을 어떻게 나타내는가는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. 주인공이 사소한 부분에서 폭력성을 드러내도록 할 수도 있고, 그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.
설정에 오류가 있는 부분을 잡는 것도 소설을 퇴고할 때 눈여겨봐야 할 점입니다. 설정에서는 어떤 실수를 하게 될까요?

가족 관계가 복잡하면 종종 혼란이 옵니다. 어머니 형제 오 남매가 등장하는 소설에서 큰 이모, 작은이모에 외삼촌 세 분이 나오면 어떨까요? 어머니는 어디 계신 걸까요? 이런 오류를 피하려면 설정을 따로 정리하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.
날짜, 특히 연도와 시간은 쓰기 전에 별도의 표를 만들어서 점검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. 편집자들이 작품을 검토하며 교정을 볼 때 주의 깊게 하는 작업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.
과학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. 뭔가 이상하면 조사를 해 보세요.
퇴고라고 하면 맞춤법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. 물론 중요하지만 맞춤법이 맞아도 좋지 않은 문장들이 있습니다. 예를 들어 소유격 조사’의’나 목적격 조사 ‘을/를’을 마구 쓰는 경우입니다.
 
“사랑스러운 나의 집에 들어서자 나의 배는 밥을 달라고 요동을 치고 있었다.”
 
한 문장에서 ‘나의’가 두 번, ‘~을“이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. 아래와 같이 고쳐 봅시다.
 
”사랑스러운 집에 들어서자 내 배는 밥을 달라고 요동치고 있었다.“
 
퇴고는 단순히 맞춤법을 고치거나 비문을 찾아내 고치는 정도가 아닙니다. 글은 퇴고로 완성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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