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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해석 가족 에세이

별 따기

by eye-bird 2024. 6. 13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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별 따보자!

 

 

나는 아들에게 양말을 뒤집지 말라고 수없이 말했는데 고1 때 고쳐졌다. 그때는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. 그 뒤로 막내딸도 그랬지만 막내는 좀 더 일찍 고쳐졌다.

“오빠는 고1 때 바뀌었어, 너는 좀 더 빨리 바뀌면 좋겠어!”

물론 효과가 있었다. 아들을 생각해서 도를 닦은 결과, 딸도 화내지 않고 기다렸다. 간간이 달래서 얘기했더니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바뀌더라. 매번 말하지 않아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….

지금도 가끔 뒤집힌 양말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때는 ‘그럴 수도 있지.’ 하고 가볍게 느끼게 되었다.

 

요즘 막내와 또 별 따기 전쟁을 하는데, 그건 딸이 아침 7시 반에 안 일어나면 밥을 안 먹는 습관이다. 나는 늘 “뭔 소리야, 왜 그때 안 일어나면 밥을 못 먹어!" 라고 핀잔한다. 시간이 많은데 왜 밥을 안 먹는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. 막내의 키는 157센티인데 중학교 가면 키가 많이 안 클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고, 딸이 굶고 학교에 갈 걸 생각하니 마음도 안 좋고, 다 차려 놓은 밥을 안 먹고 치워야 하는 것도 화가 났다. 딸은 엄마가 늦게 깨워줘서 밥을 못 먹는다고 하지만 등교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한다.

머리 감고 옷 입는데 30분, 책 챙기는 데 10분은 더 걸린다고 한다.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다. 내 말에 따라 해 보지도 않고, 그렇게 고정관념에 막혀있는 딸은 융통성이 없는 것 같다. 늘 바쁘다고 하면서 이를 닦으며 티브이를 보고, 후다닥 옷을 가져와서 티브이를 보고 있고. 티브이를 보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.

 

나는 딸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자, 아들 생각을 하며 또 마음을 내려놨다. 기다려 보자는 심정으로.

“자기가 배고프면 밥 달라고 하겠지!”

사실 나도 7시 반에 깨워주면 되는데, 조금 더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늦어질 때도 있고 주방 일로 깜박하기도 한다. 힘들더라도 부모가 늘 모범을 보이고 잊어버리는 일에는 미안하다고 해야지. 사춘기 딸한테 이래라저래라하기 어렵다. 나는 7시 반에 5분이라도 지나면 시리얼이나 더 급할 것 같으면 우유 한 잔 정도 챙겨줬다.

그런데 오늘은 달랐다. 7시 38분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더니 8시가 넘었는데도 밥을 달라고 했다. 어젯밤에 내 생일이어서 고깃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2차로 카페에 가서 빵과 차를 먹었다. 딸은 배부르다며 저녁을 거르고 잤는데 효과가 있었나 보다. 딸은 일어나서 밥을 찾았다.

“엄마, 어제 남은 미역국에 밥 말아 먹고 갈래!”

옳거니, 나는 따지지 않고 일단 아침을 차려주고 다 먹을 즈음에 딸에게 말했다.

“8시가 넘어도 밥을 먹을 수 있네, 그치!”

딸은 대꾸는 하지 않고 밥을 다 먹고, 우유를 꺼내와 한 잔 마시면서 티브이를 보며 책가방을 정리하고, 옷도 입고, 머리도 말렸다. 전천후로 다 하고 있었다. 그동안 딸이 엄마한테 자존심이 있었지만 그것도 내려놓고. ‘배고픈 데는 장사 없다.’라는 말이 지금 ‘딱’ 맞았다.

 

나는 속으로 “웬일이래!”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. 그동안 딸과 티격태격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. 이렇게 한순간에 다 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고, 신경 쓰고, 화도 내고, 딸과 갈등했는지…. 별일도 아닌데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느꼈다.

국그릇을 다시 보니 미역국에 밥알이 붙어서 한 숟갈 정도는 남아 있었다. 딸에게 이것도 마저 먹으라고 했는데 시간 없다며 우유는 먹고 있었다. 예전 같으면 억지로 입에 넣어주려고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. 별일도 아닌 것에 딸과 또 갈등을 빚고 싶지 않았다. 다시 말했다간 바쁘다고 느끼는 딸이 화낼 게 뻔했기 때문이다. 아깝지만 한 숟갈 남은 밥은 치워야겠다고 느꼈다.

 


 

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 아침에 일어난 얘기를 꺼내니 딸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. 밥 먹은 것만 기억했다.

“내가 알아서 한 거야! 엄마는 7시 30분에 깨워주면 되고.”

나는 앞으로는 꼭 늦지 않게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. 그다음 일은 말하지 않아도 딸이 알아서 척척 할 거라 믿으며.

밥을 먹고 가든, 우유만 먹고 가든 간에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며 딸이 원하는 대로 맞춰줘야겠다. 잘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니까. 딸의 생각을 더 존중해 주는 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 같다. 그리고 딸이 배가 고프면 시간 따지지 않고 밥을 먹을 걸 아니까.

딸의 고정관념은 아직 깨지지 않았지만 내가 더 기다려 주고 딸을 응원해 주면, 언젠가는 그 별도 따 줄 거라 믿는다. 내가 딸의 말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려고 하듯이 말이다.     

 

“알았어, 몇 숟갈은 먹고 갈게.”

“엄마가 해줘서 밥이 더 맛있어.”

“내가 알람 맞춰서 일어날게.”

“서두르면 밥도 먹고 갈 수 있어.”

“7시 반에 깨우지 못하면, 7시 40분까지는 꼭 깨워줘!”

이런 상상을 하면서 행복을 단 별을 하나둘 가슴에 붙여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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